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만년 전.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기 한참 전이다.

현재 호랑이는 8가지의 무리로 구분되고 있다. 인도(뱅갈)호랑이, 중국(화남) 호랑이, 수마트라 호랑이, 인도차이나 호랑이 , 카스피 호랑이, 자바 호랑이, 발리 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 (발리 호랑이, 카스피 호랑이, 자바 호랑이는 최근 50년간 멸종된 것으로 확인됨.)

한반도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한 부류인 동북아 호랑이, 학명으로 Panthera tigris altaica로 불린다. 호랑이 종류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시베리아 호랑이는 러시아의 동북면, 만주, 백두산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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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a tigris altaica. 동북아 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를 아우르는 학명. 사진에 영어로 신체적 특징이 묘사돼 있는데, 몸길이가 최장 3.8m에 달하는 모든 호랑이 중에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종류이다.

호랑이와 함께 표범 역시 한반도를 지배했던 육식동물 중 하나였다. 한국 표범(Panthera Paradus orientalis)은 세계적으로 가장 희귀한 육식동물 중의 하나로 전세계적으로도 러시아 연해주 핫산 지역에 단 30마리 미만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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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a pardus orientalis, 동북아 표범, 혹은 아무르 표범으로도 불린다.
세계적으로 50마리 미만인 이 표범은 한때 한반도에 수천마리 정도 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에 널린' 호랑이, 임금 궁궐까지 어슬렁

호랑이와 표범은 대륙성 육식동물로 이미 3만년전부터 한반도의 남쪽에서 시베리아 지방을 장악하며 동북면 일대 최강의 포식자로 군림해 왔다.

원래 한반도는 호랑이와 표범이 서식하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드넓은 산악 지역에 엄청난 수의 초식동물 군,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분포 등으로 20세기 초까지 한반도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은 수의 범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조엔 호랑이가 서울 4대문 안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목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지어 궁안에서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다.


"창덕궁 후원에 범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북악에 가서 표범을 잡고 돌아오다" (1465년 9월 14일 세조11년)

'창덕궁의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좌우 포도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했다'(1603년 2월 13일. 선조36년)

"창덕궁 안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을 내리다" (1607년 7월 18일. 선조 40년)

불과 85년전인 1921년 고종 황제 재위시절, 경복궁 안에 호랑이가 나타나 수백명의 군사가 동원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들의 기록도 역시 서울 내에서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호랑이와 표범이 목격되었고, 사람들이 호랑이에 물려가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한반도 호랑이와 표범의 최후

이 많던 호랑이가 사라진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

당시 조선을 강제 통합한 일본인들은 조선의 호랑이들에게 상당한 경외심을 느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았고, 이들은 임진왜란 때부터 난생 처음 보는 호랑이에 엄청난 인상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인들은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던 호랑이를 잡는 것이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들은 군대 사기 진작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호랑이 사냥을 시작, 조선 내에 야생 호랑이들을 닥치는대로 살육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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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 사냥꾼에 희생당한 호랑이들.
당시 조선이 "호랑이의 천국"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사냥꾼들이 몰려들어 조선의 호랑이를 살육하기 시작했다.



호랑이를 멸종 위기에 몰아 넣은 것은 당시 조선 정부의 책임도 컸다. 당시 조선 조정은 "해수구제(害獸驅除)" 즉 해로운 맹수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냥꾼들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하면서 호랑이와 표범, 그리고 늑대를 닥치는대로 잡아 들였다.

사실 당시 조선엔 너무 많은 호랑이와 표범, 늑대가 설치고 다니는 바람에 이런 조치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시기, 공식적인 기록으로만 100마리가 넘는 호랑이가 사냥됐고, 1000마리가 넘는 표범이 살육당했다.

(공식 기록에 이 정도면 실제 죽임을 당한 호랑이는 500마리 이상, 표범은 2000마리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세계 야생 호랑이의 수가 7000마리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어마어마한 수다)

이로써 한반도의 호랑이와 표범은 사실상 멸종 위기를 맞는다.

1924년 잡힌 호랑이가 마지막 한반도 호랑이로 기록, 이후 공식적으로 호랑이가 남한 땅에서 목격됐다는 증거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표범마저 1950년부터 시작된 3년 간의 끔찍한 한국전쟁으로 멸종의 길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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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한반도 최후의 호랑이로 알려졌던 1922년 사살된 호랑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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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기록상으로 마지막으로 희생된 호랑이. 이후로 다시는 호랑이를 잡았다는 공식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북한과 연합군 양측이 산악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무자비한 폭격을 가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삼림이 초토화 됐고, 이로써 표범과 호랑이 같은 대형 육식동물들의 서식지는 급감한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산에 나무를 베어 생계를 유지하는 난민들이 급증해 그나마 남아 있던 숲마저 사라졌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당시 농업 생산성 증진을 위해 전국 방방곡에 농약을 살포, 그리고 식량 유실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쥐약 살포까지 하면서 한국은 생태계 자체가 괴멸된다. (이때의 영향으로 늑대와 함께 마지막 육식동물이었던 여우마저 1978년 한번도에서 멸종한다. 여우는 공해가 심한 도심 지역에서도 사는 육식동물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멸종될 정도로 한국의 생태계 파괴는 극심했었다.)

1962년 경남 합천에서 최후의 표범 한 마리가 마을 주민에 의해 생포된다. 당시 1년생 수컷이었던 이 표범은 이후 창경원에 기증됐고, 당시 창경원 직원들은 표범을 극진히 아껴 당시 사람도 먹기 힘든 쇠고기를 매일 주었며 여름엔 선풍기까지 틀어주었다고. 

이 표범은 극심한 운동부족과 과식으로 비만에 시달렸고, 결국 한국 최후의 표범은 1973년 창경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당시 표범은 전신에 욕창이 심해 박제로도 남길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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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지막 표범 최후의 모습. 비만과 운동부족으로 매우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와 표범은 이렇게 제대로 박제로도, 기록으로도 남지 못한채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한반도 호랑이 박제는

한반도의 늑대 역시 표범과 비슷한 운명을 맞는다. 1968년 최후의 늑대가 포획됐고, 1997년까지 동물원에서 근친교배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더 이상 번식이 불가능해 진 채 사망한다.


호랑이와 표범이 남한에 생존할 가능성은 없나?

일반적으로 한 지역의 야생동물이 50년간 서식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멸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 이 논리에 의하면 한국의 호랑이와 표범은 오래 전에 멸종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최근까지 계속해서 표범에 대한 서식 증거가 발견되면서 이젠 전문가들도 남한 땅에 표범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남한에 표범이 다시 번성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범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10마리 이내에 머물 것이며, 이 경우 지속적인 근친교배 때문에 표범들은 번식력이 극히 떨어지고 결국엔 완전 멸종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나,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호랑이 역시 극소수의 개체만 살아남은 상태에선 다시 자연 번식으로 생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남한의 호랑이와 표범이 "멸종"이라는 선고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휴전선 때문이다. 휴전선은 대륙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자연 생명체의 이동을 차단해 남한을 생태적 고립 지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설사 호랑이가 북한에서 생존해 번성한다 하더라도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는 한 이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생존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결국 생태적으로 고립된 남한의 대형 육식동물은 다시 살아남기 힘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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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표범, 늑대, 심지어 여우까지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육식동물들이 사라지면서 남한은 멧돼지의 천국이 됐다. 천적이 없어진 멧돼지는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자랑하며 전국 방방곡곡에 그 수가 넘쳐나기 시작한다. 최근엔 농가를 습격해 농작물을 망치고 사람까지 해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결국 마을 주민들은 멧돼지를 막기 위해 동물원의 호랑이 배설물을 가져다가 이들의 출입을 막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