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결혼해서 후손을 남겼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의 내용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그 후손이 메로빙거 가문에 흡수되었다"로 요약 가능하다. 

그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되려하였으나 유대인의 반발로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처남(막달라 마리아의 동생)을 통해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뇌물을 주고 처형된 것처럼 속이고 프랑스로 망명한다.

2. 프랑스로 망명한 예수는 골 지방에서 은둔하며 80세까지 살다가 죽었으며 무덤이 프랑스 남부 렌느 르 샤토 지방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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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느르샤토에 있다는 예수의 무덤

3. 훗날 후손들은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가 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1099년 무렵 유대로 돌아가 다윗왕을 계승하기도 했다. 이들 예수의 후손은 성당 기사단과 시온 수도회의 보호를 받으며 오늘날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 살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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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후손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주장하는
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 피에르 플랑타르(사진 뒤)

4. 이러한 비밀이 담겨진 문서가 남아있었는데 그것을 프랑스 베랑제르 소니에르 신부가 오래된 성당을 보수하던 중 막대한 보물과 함께 양피지로 된 고문서가 발견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진게 된다.

5. 고문서를 조사하고 메로빙거 왕가와 성당기사단에 대해 조사하여 발표한 책이 "성혈과 성배"이며 영국 BBC 방송이 소니에르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영국 사회에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6. 이에 영국 종교계가 반발 재판에 재소하였으나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담당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여러 목사님, 신부님, 그리고 수녀님들 죄송합니다... 저의 집안은 3대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집안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을 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로 망명해서 84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라고 판결하였다.

7. 판결문이 낭독되는 순간 목사와 수녀 등이 옷을 찢고 통곡하는 등 큰 소동이 있었다고 하며 기독교가 주종교나 다름없던 영국 사회에서 80%의 인구가 타종교로 개종하거나 기독교를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영국 정부는 이 재판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여 언론을 통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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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같은 "출처"를 갖는다. 

1980년대 출간된 두 권의 책이 바로 그 출처다. 이 책들에 의해 예수의 후손과 예수의 후손을 보호하는 시온 수도회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것이다.

그 문제의 두권의 책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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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과 성배(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Michael Baigent, Richard Leigh and Henry Linco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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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유산(The Messianic Legacy)
Michael Baigent and Richard Leigh and Henry Lincoln


이 두권의 책이다.

이 두권의 책 모두 같은 3명의 저자가 쓴 것이고, 예수의 후손이 유럽에 살아 남았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쓰여진 역사 소설이다. (특히 성혈과 성배는 8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의 탄생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항상 마지막에 저자 이름이 나오는 헨리 링컨(Henry Lincoln).

역사추리 소설 전문 작가인 헨리 링컨은 소설을 쓰려고 프랑스 지방에서 조사를 하다가 "시온 수도회"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고, 바로 이 시온 수도회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다른 작가들과 함께 책을 냈던 것이다.

그럼 헨리 링컨은 어디서 시온 수도회의 존재에 대해 알았을까? 바로 프랑스에 사는 어느 정체모를 한 사나이로부터였다.


한명의 허풍선이 만들어낸 엄청난 거짓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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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플랑타르. 가난한 집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기꾼, 문서 위조가 등으로 활동한 인물.

그는 비천한 출신이었음에도 높은 자긍심을 가지려 했던 사람이었다. 여러 지역에서 정치 출판 활동을 하면서 존재하지도 않은 단체의 대표직을 맡는가 하면, 높은 신분의 귀족들, 특히 유명 정치인들과 잘 아는 사이라고 허풍을 늘어 놓곤 했다. 그는 금지된 단체 활동으로 4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그의 허풍과 거짓말엔 한계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이라 칭했고, 거기에 자신이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이면서 예수의 자손을 보호하는 비밀 결사단, "시온 수도회(Priory of Sion)"의 수장이라는 직책까지 덧붙였다. (시온이라는 이름도 플랑타르가 살던 지방의 뒷동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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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수도회의 오리지널 문서 1페이지
시온 수도회의 모든 문서는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priory-of-sion.com/psp/posd/regdoc.html


(플랑타르가 어디에서 "예수의 후손"이라는 기상천외한 소재를 얻게 됐는지는 아직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플랑타르 혼자서 지어낸 것 같지는 않다.)

그는 1956년 이 황당한 거짓말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문서 위조를 전문으로 하는 친구와 함께 "비밀 문서(Dossiers Secrets)"를 만들기 시작한다. 플랑타르와 그의 친구는 수개월 동안 이 비밀 문서라는 고문서를 위조했는데, 내용인 즉

"예수는 이스라엘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 그의 후손이 프랑스에 정착해 메로빙거 왕조의 보호를 받기 시작,

"메로빙거 왕조는 예수의 후손을 비밀리에 보호하기 위해 시온 수도회라는 결사 단체를 만들었고, 

"이 시온 수도회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위인들이 수장(그랜드 마스터)을 맡아 왔다."

시온 수도회의 마지막 수장이 바로 플랑타르 자신이라는 것. 바로 이 점이 모든 '사기극'의 핵심이었다. 예수의 망명 후, 시온 수도회의 수장을 맡았다는 인물들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Ugo de Blancheford ( 1150 - 1151 )
Bernard de Tremblay (1151- 1153 )
Guillaume de Chanaleilles (1153- 1154 )
Evrard de N...? (1154- 1154 )
Andre de Montbard (1155- 1156 )
Bertand de Blanchefort (1156- 1169 )
Philippe de Milly (1169- 1170 )
Eudes de Saint-Amand (1170- 1180 )
Arnaud de Toroge (1181- 1184 )
Gerard de Rideford (1184- 1188 )
Jean de Gisors (1188- 1220 )
Marie de Saint-Clair (1220- 1266 )
Guillaume de Gisors (1266- 1307 )
Edouard de Bar (1307- 1336 )
Jeanne de Bar (1336- 1351 )
Jean de Saint-Clair (1351- 1366 )
Blanche d'Evreux (1366- 1398 )
Nicolas Flamel (1398- 1418 )
Rene d'Anjou (1418- 1480 )
Iolande de Bar (1480- 1483 )
Botticelli (1483- 1510 ) - 보티첼리  
Leonardo da Vinci (1510- 1519 ) - 레오나르도 다빈치 
Charles III (Duke of Bourbon-Montpensier) (1519- 1527 )
Ferdinand de Gonzague (1527- 1556 )
Nostradamus (1556- 1566 )
Duc de Longueville & Nicolas Froumenteau (1566- 1575 )
Louis de Nevers (1575- 1595 )
Robert Fludd (1595- 1637 )
Johann Valentin Andrea (1637- 1654 )
Robert Boyle (1654- 1691 )
Isaac Newton (1691- 1727 ) - 아이작 뉴튼
Charles Radclyffe (1727- 1746 )
Charles de Lorraine (1746- 1780 )
Maximillian de Lorraine (1780- 1801 )
Charles Nodier (1801- 1844 )
Victor Hugo (1844- 1885 ) - 빅토르 위고
Claude Debussy (1885- 1918 ) - 드뷔시
Jean Cocteau (1918- 1963 )
Pierre Plantard (1963- 1981 ) - 피에르 플랑타르 (이 문서를 위조한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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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플랑타르가 위조한 비밀문서(Dossiers Secrets).
바로 이 위조 문서가 수천만 기독교인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카톨릭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수억 달러대의 '산업'을 일으킨 [다빈치 코드]의 원형이었다.  

이 비밀 문서에는 천년 이상의 이어온 메로빙거 왕조의 계보, 시온 수도회의 역사 등이 빽빽히 적혀 있었고, 워낙 치밀하고 철저하게 시나리오를 작성해 누가 봐도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플랑타르는 이 문서를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만들었지만, 헨리 링컨과 같은 작가들에겐 돈벌이의 수단이었다.

프랑스에서 플랑타르와 개인적인 친분 갖게 된 헨리 링컨은 플랑타르가 조작한 고문서를 손에 넣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1982년 성혈과 성배라는 책을 공저하게 된다. (나중에 이 '비밀' 고문서는 어느 지방의 도서관에 버려진다.)

문제는 이 책이 마치 플랑타르의 거짓말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처럼 꾸며 놓았다는 것. 거기에 덧붙여 예수가 프랑스로 도망가 후손을 낳게 됐다는 사실을 크게 부각시켰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상에 알려지자 플랑타르는 겁을 먹었다. 그는 시온 수도회는 책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단체이며, 비밀 문서는 자신의 약을 먹고 적은 위조문서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약 10년 뒤에는 모든 것이 자신이 혼자 위조한 거짓말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의 거짓말을 바탕으로 쓰여진, 천문학적인 판매고와 수익을 기록한 "다빈치 코드"가 탄생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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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플랑타르 사기극의 결정판. 다빈치 코드.
플랑타르의 사기 행위는 이미 BBC 방송국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은 그 사실을 알고도 과거의 "성혈과 성배"를 바탕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세계적 베스트 셀러를 만들어 냈던 것.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적 사기꾼, 피에르 플랑타르(Pierre Athanase Marie Plantard)
1920년 3월 28일 출생, 2000년 2월 3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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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쇼멜과 피에르 플랑타르 - 장 뤡 쇼멜이 피에르 플랑타르를 철저히 파헤쳤다.